솔직히 저는 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주변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당연하게 휴대폰을 사주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시대가 변했으니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제 아이를 포함해 주변 아이들이 휴대폰 없이는 하루도 못 버티는 모습을 보면서 이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최근 정부가 AI교육 강화를 국정과제로 내세우면서 디지털 교과서 도입까지 추진하고 있는데, 이제는 단순히 한 부모의 고민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가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디지털 교과서, 뇌발달 시기에 정말 괜찮을까
제가 직접 아이를 키워보니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디지털 기기에 중독됩니다. 처음에는 학습용 앱만 사용하게 하려고 했지만, 어느새 유튜브 숏츠와 게임에 빠져 있더군요. 이런 상황에서 학교마저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전두엽(Prefrontal Cortex)은 25세까지 발달한다고 합니다([출처: 한국뇌연구원](https://www.kbri.re.kr)). 여기서 전두엽이란 판단력, 집중력, 충동 조절 등 고차원적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뇌 부위를 의미합니다. 특히 초등학교 시기는 이 전두엽이 급격히 발달하는 결정적 시기인데, 이때 과도한 디지털 미디어 노출은 뇌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 아이가 휴대폰 사용 시간이 길어진 후 눈에 띄게 달라진 점들이 있었습니다. 책을 읽을 때 집중하는 시간이 짧아졌고, 한 가지 일을 끝까지 해내는 인내심도 약해졌습니다. 저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 주변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거의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지고,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현재 교육부가 추진하려던 AI디지털교과서(AIDT)는 국민들의 반대로 일단 중단되었지만, AI교육 강화라는 큰 흐름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정부는 AI 3대 강국을 목표로 내세우며 초등학교 1학년부터 AI교육을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접근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뇌가 한창 발달해야 할 시기에 미디어에 과도하게 노출시키는 것은 아이들의 정상적인 성장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디지털 기술과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디지털 기기를 다루는 기능적 능력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서 정보를 선별하고 평가하며, 윤리적으로 소통하는 통합적 능력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능력은 기본적인 사고력과 판단력이 갖춰진 후에야 제대로 발달할 수 있습니다.
공교육에서만큼은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해야 하는 이유
제가 교육 관련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들었던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한 신경과학자가 이런 경고를 했습니다. "앞으로는 사람과의 의사소통보다 AI와의 의사소통을 더 편하게 느끼는 세대가 나타날 것입니다." 처음에는 영화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우리 아이들을 보면 그게 현실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대화하는 시간보다 각자 휴대폰을 보는 시간이 더 많아졌습니다.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대신 교실에서 게임을 합니다. 점심시간에도 유튜브를 보느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못합니다. 이런 현상이 일상화되면 아이들은 인간관계 형성 능력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게 됩니다.
미국 전국리터러시교육협회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미디어를 통해 전송되는 상징을 부호화하고 해독하며, 매개된 메시지를 종합, 분석, 생산하는 능력'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출처: NCTE](https://ncte.org)). 여기서 핵심은 단순히 미디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런 능력은 실제 세계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아야만 발달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공교육에서만큼은 디지털교과서보다 종이 교과서를, 온라인 학습보다 오프라인 활동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활동하는 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비슷한 의견을 가진 분들이 많았습니다.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입니다.
- 종이 교과서로 공부할 때 아이들의 집중도와 기억력이 더 좋다는 연구 결과가 많음
- 손으로 직접 쓰는 활동이 뇌 발달과 학습 효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침
- 친구들과 함께 협동하는 아날로그 활동이 사회성 발달에 필수적임
물론 AI 시대에 디지털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주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시기와 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는 오히려 아날로그적 경험을 충분히 쌓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디지털 기술은 그 이후에 배워도 늦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기본기가 탄탄한 상태에서 배우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제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AI가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이미 AI는 실제 사람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한 영상과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환각 현상(Hallucination)이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이는 AI가 학습 데이터에 없는 내용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생성해내는 현상을 말합니다. 아직 판단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아이들이 이런 콘텐츠에 무방비로 노출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영화 '소년의 시간'이 경고했던 것처럼, 아이들이 특정한 정치적·경제적 목적을 위해 AI를 활용하는 어른들의 의도에 포획될 위험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교육계가 중심이 되어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경제 부처나 과학기술 부처가 나서서 성과 중심으로 밀어붙일 일이 아닙니다.
저는 제 아이를 키우면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절제를 배우지 못하고 휴대폰에만 빠져 있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그 절제력과 자기조절 능력은 어린 시절 충분한 아날로그적 경험과 인간적 관계 속에서만 길러질 수 있다는 것을요. AI 3대 강국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들을 키워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정부는 대학과 대학원 단계에서 소버린 AI 개발과 전문 인재 양성에 집중하고, 초등교육에서는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는 교육 원칙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교육 전문가, AI 전문가, 뇌과학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주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AI시대 교육 준비가 아닐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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